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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 4 폭력의 근대화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땐 시큰둥했다. 첫 권을 보니 실존 인물인가 싶을 정도의 까마득한대선배들의 등장. 채만식, 현진건, 염상섭, 김유정, 이상.물론한국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이분들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겠지마는 한편으로는 좀 화석 같은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절대 만지거나 책장을 넘겨선 안되고 유리장 밖에서 눈으로만 봐야하는 유물들.두 번째, 세 번째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한국 단편 문학선 1,2>에 이미 등장한 바 있는 유명한 작가의 익숙한 작품들. 이렇게 겹치기 출연을 해도 되는거에요? 눈을 흘기며 지나갔지.무려 황석영 선생님이 고르셨고 내가 좋아하는 단편집임에도 시큰둥 했던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역시 만날 놈은 만나고 마는게 세상의 이치인가 보다. 퇴근길, 다가오는 전철 시간을 분 단위로 체크하며 서점에서 집어든 책이 이 4권이었다. 황석영, 이문구, 이청준, 조세희, 김원일. 익숙히 들어온 이름의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 그래 오늘은 너로 정했다.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1970년대, 대한민국이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터져 나온 고름을 원료로 삼은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석영 선생님의 작품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건 탁월했다. <몰개월의 새>는 베트남 파병 군인의 훈련소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데 박정희 정권은월남전에 대한민국 청년들을 바친 대가로 산업화를 위한 대규모 차관을 얻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이문구, 송기숙의 소설은 산업화 시대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농촌의 풍경을 그린다.한승원의 <목선>과 이청준의 <눈길>도 시골을 배경으로 하지만 앞선 두작품과는 좀 다르다. <목선>은 부대끼는 삶을 꾸역꾸역 삼키고 살아야만 하는 어민들의 비애를 당대사와 느슨하게 연결한다는 점에서 오히려보편성을 갖는다.<눈길>도 마찬가지. 비록 새마을 운동이 발단이긴 하지만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이를 애써 외면하다 결국 그 커다란 사랑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아들의 이야기가 별빛처럼 은은하게 흐르는 작품이다.윤흥길과 송영의 작품은 폭격을 피해 시골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의 슬픈 군상을 훑는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고향을 버리고 서울 변두리에 무허가 날림집을 짓고 살아야 했던 노동자들, 환경 정화라는 명목으로 실행한 철거에 맞서 싸우다 완전히 거지가되고마는 개털들의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송영의 <중앙선 기차>는 입에 풀칠할 방도를 찾아 변두리에서 도심지로 떠나는 기차칸의 정경을 그린다.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기차칸은 그야말로 세상의 축소판이다.이 책에서 다소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건 이병주와김원일이다. 이병주의 <겨울밤>은 너희가 목숨 걸고 이루려 한 공산주의가 얼마나부패했는지, 이념이란 얼마나 무의미한지조롱해 은근히 신경을 긁는다. 김원일의 <어둠의 혼> 또한 이념이 뭔가요? 내 아버지를 죽게해 우리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 그것인가요? 라고 묻는듯 그 무상함이느껴지는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어찌보면 다른 작품들과 정반대의 대척점에 선다고 볼 수 있지만좌우를 불문하고 훌륭한 작품을 실었다는 점에서 이 단편집의진정한 가치를 드러내는대목이기도 하다.책의 마지막은 조세희가 장식한다. 기획의 맺고 끊음이 얼마나 탁월한지. 조세희가 누구인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제목 그대로 쏘아 올린 뒤그대로 전설이 된 사나이다. <난쏘공> 이후 조세희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는 못하지만 고뇌의 끈을 놓고 허송세월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80년대의 치열한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자기 문학을 오롯이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시도를 감행한다. 조세희는 70년대를 끌고 80년대로 나아간다.재미의 여하를 떠나 소설이 끝날 때 마다 등장하는 황석영의 덧붙임 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작가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낚시를 떠나고, 바둑을 두고 어쩔때는 감옥에서 만나기도 하는 황석영 선생의 일화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이야기가 된다.이 분은 정말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염상섭부터 김애란까지,
거장 황석영과 함께 걷는 한국문학 100년의 숲

1962년 등단, 오십여 년 한결같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거장 황석영이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 소설문학 작품들 가운데 직접 가려 뽑은 빼어난 단편 101편과 그가 전하는 우리 문학 이야기. 작가 황석영이 온몸으로 겪어낸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과거의 작품들은 그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부활했고, 오늘의 작품들은 그 깊이가 달라졌다.

긴 시간 현역작가로 활동해온 그이기에, 그리고 당대와 언제나 함께 호흡해온 그이기에 가능한 ‘황석영의 한국문학 읽기’! 특유의 입담과 깊이 있는 통찰, 과거와 오늘의 작품을 새로 읽는 데 있어 반성을 주저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우리 문학에 다가서기 어려워하는 독자들까지도 작품 곁으로 성큼 이끌어준다.

기존의 국문학사나 세간의 평가에 의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현재 독자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선정된 작품들에는 유명한 작가의 지명도 높은 단편뿐만 아니라 지금은 거의 잊힌 작가의 숨은 단편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각 권의 말미에는 시대와 작품을 아우르는 문학평론가 신수정의 해설이 덧붙여져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펴내며
누구에게나 일생에 절창은 하나씩 있다 _004

황석영, 「몰개월의 새」 _013
어느 세상의 끝에 대하여 _032
이문구, 「해벽海壁」 _039
남의 하늘에 묻어 살며 _127
이병주, 「겨울밤―어느 황제의 회상」 _143
조국은 없다, 산하가 있을 뿐이다 _195
이청준, 「눈길」 _209
자기 구제로서의 글쓰기 _241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_249
쫓겨난 사람들 _300
김원일, 「어둠의 혼」 _309
짙은 보라색 하늘 _336
송영, 「중앙선 기차」 _345
인상적인 장면의 포착 _386
한승원, 「목선木船」 _397
내 살과 뼈를 키워준 바다 _419
송기숙, 「당제堂祭」 _425
낙천적 활기와 비장한 결의 _487
조세희,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_503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_541

해설 | 신수정(문학평론가)
현대식 교량을 꿈꾸며 _555